두레마을 유창하 대표 인터뷰

2015.04.22

인터뷰어 : 안녕하세요. 유창하 대표님.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시간이 없으시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중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유창하 대표 : 11년 전에 우리 아내가 상해에 유학을 온 유학 1세대거든요. 그래서 상해에서 공부하고 있었어요. 내 일로 온 게 아니고 아내 일하러 온 거죠. 11년 전에 아내 일하러 왔고 나는 다른 일 접고 왔고, 그렇게 가족들이랑 와서 3년 정도 있다가 아내는 뭐 중국에 공부7~8년 하고 일도 몇 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 자기는 할 일 다 해서 돌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2년 정도 이런저런 활동도 하고 이러다가 한 번 발을 담그니까 못 빠져 나와서 두 발 다 담근 거죠. (웃음)

인터뷰어 : 대표님은 커뮤니티가 아닌 다른 일을 하셨었나요?

유창하 대표 : 처음에 적은 자본으로 가게도 자그맣게 해봤죠. 그게 뭐 큰 사업으로 생각한 건 아니고 아내 때문에 온 거여서 처음엔 사업하려고 안 했죠. 실험 삼아 작은 가게 해봤어요.

인터뷰어 : 원래 커뮤니티를 계획하셨던 건 아니군요.

유창하 대표 : 원래 계획을 했던 건 아니고 사람들 생각이나 고민을 들었죠. 그 당시에는 고민이 “사기를 당했네.”, “집을 얻는데 보증금을 뜯겼네.”, “병원 어떻게 가야 하나.” 이런 어려움을 토로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반적인 어려움을 쉽게 푸는 방법이 있을 건데 생각을 하다가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서 로컬 학교나 병원, 미용 관련 이런 것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보자 한 거죠. 지금은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질문 답변해서 풀어가고 있어요. 교민들이 가진 간지러운 부분을 내가 발견을 하고 공통적인 부분이 뭔지를 생각한 거죠. 모든 문제를 같이 풀 수 있는 게 뭔지를. 그래서 5만 명의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가? 어떤 문제가 있는가? 생각하다가 인터넷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해결을 해보자 한 거죠. 근데 정식 사이트를 만드는 건 어렵고 또 접근성이 떨어지니 포털을 이용하면 쉽게 접근을 하겠다 싶었죠. 그 작업을 2년 정도 한 거예요. 아까 말한 것처럼 로컬학교, 국제학교, 여행지, 병원 그다음에 비자를 만드는 거 등등.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 제공해준 거죠.

인터뷰어 : 컨텐츠를 먼저 제공을 하신 거네요.

유창하 대표 : 처음에는 6개월 정도는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교통편, 여행, 가이드 등을 직접 만들었죠.

인터뷰어 : 궁금한 게 생기는데, 이런 부분은 단순히 보면 봉사잖아요?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고민 해결을 내가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끌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유창하 대표 : 원래 내가 좀 성향이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 이런 것보다는 내 주변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을 하고, 하고자 하는 일이 어떻게 잘 풀릴까를 봐주고 하는 것이 내 기본 사고방식이고 살아온 삶이라서.

인터뷰어 :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어떠하셨는지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유창하 대표 : 그게 어떻게 보면 다 돌아와요. 결국은 방향을 잡아주고 그런 것이 고민 자체를 풀기 위해 나도 그 속에 들어가야 하거든.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의 문제도 같이 풀리는 거예요. 같이 도와서 일을 하고 좋은 정보를 나누고 같이 성장을 하는 거죠.

인터뷰어 : 그 전에 인터넷 관련 커뮤니티를 하셨던 적이 있었나요?

유창하 대표 : 전혀 안 했죠. 온라인은 처음이에요. 오프라인을 더 많이 했어요. 여러 조직을 만들고 맘에 안 드는 조직은 부수기도 하고 없는 조직을 새로 만들기도 하고 그랬어요. 한 지역에서 그 지역의 문제를 풀어내는 시민조직에 발을 좀 담고 활동을 많이 한 편이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환경문제나 먹거리나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했어요.

‘생태기행’ 이런 조직도 만들어서 환경운동 이런 쪽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또 어린이들 체험 학습하는 조직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어요. 그전에는 대기업에서 이런 활동조직을 만들어서 그런 분야 일도 좀 했고요.

그러고 나서 ‘생활협동조합’ 이런 것도 만들어 투자를 받아서 이사진도 구성하고 매장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죠. 환경조직을 만들어서 그 지역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뭔가 대처하기도 하고,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어요. 나중엔 청소년 환경교육 기자학교를 만든 적이 있어요.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 청소년 기자학교를 만들어서 청소년들이 기자부 일을 하는 걸 도왔죠.

내 닉네임이 흙집이잖아요. 흙집. ‘상하이 흙집’인데, 한국에서는 흙집 동호회라는 걸 만들어서 전국을 돌면서 ‘흙집 짓기 세미나’를 하고 한편 생태 마을 만들기도 했어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지리산이든 어디에 같이 집단으로 땅을 사서 거기에 흙집을 짓고 같이 공동생활을 하고, 공동 교육을 하는 이런 것이 생태 마을인데, 생태 마을을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세미나도 하고, 이런 흙집 짓기도 같이 공부하기도 하고 그랬죠. 그것 때문에 내 닉네임이 상하이 흙집이 된 거예요.

인터뷰어 : 쭉 들어보니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많이 해오셨네요. 모임이나 조직을 구성하고 활동하는 부분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유창하 대표 : 내가 야학공부를 했어요. 야학을 24살 야학을 했으니까, 그때부터 공동체 활동을 한 거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 쉬고 한 거죠.

인터뷰어 : 야학의 목적이 공동체는 아니었겠지만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생활을 하게 되신 거군요.

유창하 대표 : 노동운동, 시민운동, 환경생태운동, 교육활동도 하면서 시대가 변하는데 맞춰서 조금, 남보다 조금 앞서갔었죠. 꼭 그 시대의 유행처럼 하는 것을 했던 건 아니었고요.

인터뷰어 : 그 시대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신 거네요.

유창하 대표 : 상해에 온 지 이제 11년 차인데 상해도 이제 보이잖아요. 그렇죠? 사람들의 고민을, 대중집단 심리를 잘 읽어야 하거든요. 10만 명이 있으면 공통분모가 뭔지, 공통으로 생각하는 것은 뭔지, 집단심리를 잘 읽어야죠.

물론 방향을 잡을 때 너무 앞서나가도 안 되고 같이 나가도 안 돼요. 최소 2걸음만 앞서나가야지 초기에 와서 너무 앞선 일을 할 때는 사람들이 잘 안 따라오더라고요. 7년 전에 생태 쪽에 관심이 있어서 그쪽 일을 많이 했거든요. 생태 마을 만들기, 꽃집 관찰, 습지 관찰, 숲 체험 이런 것들을 많이 했는데, 7~8년 전에 이런 것들 하니까 사람들이 못 따라와요. 돈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몇 번 해보고 말이죠.

연사탐방이랑 독립군 유적들은 내가 8년 전에 헸었어요. 그때는 사람들이 잘못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하다가 말았죠. 세월이 좀 지나니까 3년 전부터는 조금씩 앞선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따라와요. 교민 사회 자체가 성숙이 되니까 이제는 좀 따라오는 편이죠. 그런데 이제 내가 나이가 많다 보니까 나서지도 못하고 있어요.

인터뷰어 : 자연스레 공동체 생활을 하시면서 삶을 살아오셨는데, 그 삶의 방식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다른 사업은 어떤 걸 준비하고 계신 건지 궁금합니다.

유창하 대표 : 교민들의 생활정보를 서로 알게 하는 게 첫째 목표였어요. 강한 교민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가?” 이런 것들을 자꾸 깨우치게 하는 그게 다음 목표죠. 그러면서 우리가 먹고살아야 하니까 먹고 사는 부분 역시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그러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겠고 고민도 많이 하며 느껴야겠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느껴선 안 돼요. 치열하게 건강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자기의 경제적인 부분도 해결해야 하는 게 ‘두레’라는 말이거든요.

스스로 생산하고, 스스로 만들어내고, 스스로 유통하며 같이 살아가는 게 ‘두레’라는 우리 고유의 표현이에요. 스스로 살아가는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누가 돕지 않더라도, 땅에서 돕지 않더라도 모인 사람들 자체가 스스로 깨우쳐서 경제력을 회복하는 거. 그게 최종적인 목적이죠.

인터뷰어 : 이 부분을 통해 들어오는 소득이 낮았을 것 같은데, 대표님은 커뮤니티 이끌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계신 것 같은데,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유창하 대표 : 과거에는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살아왔잖아요. 근데 그런다고 먹고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그걸 아는 거죠. 최소한도 앞으로의 사회가 돈을 벌려고 사업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사업이 되는 게 아니죠.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성숙하게 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정말 꾸준하게 열심히 해내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면 먹고 사는 부분은 나중 문제가 되는 거예요. 자연히 해결되는 완숙된 사회가 되는 거에요.

인터뷰어 : 예를 들어 경험하신 것이 있다면 하나만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창하 대표 : 한국 사회는 거기까지 온 단계는 아니라 생각해요. 한국 사회도 점차 조금씩 바뀌고는 있어요. 먹고 사는 부분은 최소한 남아야 하는 건데 우리가 살아가는 게 욕심이 많아서 그렇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먹거리는 다 오게 되어있어요. 두레마을을 만든 지 11년인데, 11년째 온라인에서 활동하면서 부수적인 일을 조금씩 해요. 부수적인 일은 조금씩 동시다발적으로 하면서 작은 부분으로 수익을 내는 거죠.

두레마을은 메인에 있어도 수익이 없으니까 다른 부분에서 무역 관련된 일로 수익을 내고 글을 통해 이익을 조금 얻어요. 정말 처음에는 그렇게 했고, 그다음에는 한국에 잠시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때 가서도 한 6개월 정도는 택시 운전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삶의 자세로 최소한의 생계비를 유지하고 사느냐 그런 자신의 올바른 정신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정신을 일반인들이 가지지 않는 게 나는 불만이에요. 자기 수입원 자체를 꼭 뭐 경매소, 고층 아파트, 고급 차를 몰고 그런 게 아닌 건데, 누구나 다 자신이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는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렇게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을 하든 부끄러움이 없는 사회가 되겠죠?

내가 100만 원을 벌든 50만 원을 벌든, 남들이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는 나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비교하다 보니 자기의 길을 못 찾는 거지, 내 나이에 맞게 생활을 하고 먹고 살 수 있다면, 일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할 때 나 같은 경우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이 나한테 이걸 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 내가 정말 했던 일들이 뭐 직업이든 직업이 아니든 간에 했던 일들이 한 15가지 정도 되는데, 다 남이 하라고 해서 한 게 아니고 다 내가 선택을 해서 1년을 하기도 하고, 5년을 하기도 하고, 10년을 하기도 했어요.

인터뷰어 : 내가 마음을 잡고 나아가지만 그래도 어려운 순간이 온단 말이죠. 그런 때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유창하 대표 : 어렵다고 너무 자학하면 안 되죠. 그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돼요. 그래서 항상 그런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거죠. 지금 내가 이런 건 아직 내가 문제를 잘못 풀었고, 정답을 못 찾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다시 해보는 거에요.

나도 그런 고비가 많았는데 특히 내가 돈도 별로 없는데 사고를 당하면 그 문제 풀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잘 예방하지 못한 그런 책임이 분명 나한테 있는 거니까 다시 한 번 더 내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했어요. 그렇다고 막 치워버리면 안 되는 거죠. 한국사람들 급한 거 있잖아요. 그게 문제인 것 같아요.

나는 능글맞고 너그러운 편인데, 인간관계는 뭐랄까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에 보니까 대부분 유연하거든. 유연해. 극단적인 선택은 안 하고 자길 돌아보고 기다리고 천천히 하고, 자신을 그렇게 만들 필요가 있는 거죠. 성격이나 이런 것들은 자기가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거잖아요. 나도 옛날엔 말도 더듬었고 남 앞에 서면 벌게지고 그랬었어요.

인터뷰어 : 안 느껴지는데요? (웃음)

유창하 대표 : 옛날엔 그랬어요. 자기를 훈련하는 거죠. 나도 머리가 안 좋은데 계속 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김연아가 열심히 해서 자기의 기량을 발휘했듯이 우리가 타고난 것이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독한 훈련을 반복해서 하면 그게 단련이 되어서 남들보다 더할 수 있는 거죠. 이런 성격개조나, 말이나, 행동이나, 사고 이런 것들도 자기가 얼마나 반복해서 연습하고 훈련하느냐에 따라서 순화된 사람으로 바뀌는 거죠.

인터뷰어 : 정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소중합니다. 다시 두레마을로 돌아와서 그러면 두레마을을 운영하며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유창하 대표 : 아무래도 온라인은 수평조직이다 보니 댓글, 게시글로 인한 고소고발사건이 많았고. 그 부분에서 생기는 갈등들이 어려워요. 고소고발사건들이 생기는 게 어려워요. 그리고 지금은 별로 없는데 예전엔 누가 위급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잖아요. 그럴 때 두레마을을 만들어놓고도 힘이 없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구나 싶었을 때가 힘들었어요.

인터뷰어 : 안타까운 문제들이 보여서 만드신 건데 참 안타까우셨겠습니다. 그럼 만들 당시 지금의 두레마을을 상상하셨었나요?

유창하 대표 : 처음에는 한 5년 정도만 하면 어느 정도 온라인에서 교민사회의 한 여론으로 자리 잡겠다 생각을 했어요. 근데 여론을 형성하는 집단으로 조직이 되는데 7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인터뷰어 : 와~ 예상을 하셨던 거네요.

유창하 대표 : 그렇죠. 원래 오프라인 조직이 내 전공인데. (웃음)

인터뷰어 : 그렇다면 두레마을의 초기와 지금을 비교하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유창하 대표 : 처음 목적은 상해의 전반적인 각 요소요소의 필요한 많은 분야에서 선도적인 여론형성이 컸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일부분만 하고 있죠. 원래 목표는 여러 분야의 여론을 잘 끄집어낼 수 있는 이런 지도층으로 설정했는데 지금은 그건 아니에요. 생활정보 나누는 게 가장 우선이고 그다음에 문화공간을 만들어서 교민들이 이용하게 하는 거죠. ‘아름다운 가게’, ‘북카페’도 만들었고 이번에는 청소년 온라인 기자단을 만들려고 해요. 청소년을 사업은 벌써 10주년이네요. 그쪽 분야를 전파하는 중이에요.

인터뷰어 : 그러면 가장 큰 성장요인은 무엇인가요?

유창하 대표 : 상해에 있는 교민들이 일단 뭐랄까 수준이랄까? 다른 지역보다 높은 수준이 첫 번째 요인이고, 두 번째는 온라인의 특성에 맞는 중간 지도층들이 형성된 것. 온라인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운영진들이 구성되어 운영한 게 두 번째 요인이죠.

인터뷰어 : 그분들은 어떻게 만났나요?

유창하 대표 :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 눈여겨보고 직접 발굴해서 만나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가게도 훈련과정을 거쳐서 일하게 했어요. 잘 돌아가면 내가 뒤로 빠지고 뒤에서 조금씩 도움만 주고 필요한 부분 있으면 직접 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인터뷰어 : 어떤 분들이 운영진에 있나요?

유창하 대표 : 지금 40대 여성분들이 많이 해요. 40대 여성분들이 ‘북카페’, ‘아름다운 가게’ 오프라인과 온라인도 역시 40대 초반 사람들이 온라인을 같이 이끌어나가고 있죠.

인터뷰어 : 20대는 없네요.

유창하 대표 : 없죠. 다 40대.

인터뷰어 : 현재 IT 시장이 돌아가는 걸 보면 이슈들이 다 젊은이 쪽으로 집중되어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꼭 젊은이만의 시장이 아니다 생각이 드네요.

유창하 대표 : 40대는 민주화운동 세대잖아요. 공동체 의식은 4, 50대가 더 많아요. 20대는 개인주의가 많고 개인의 문제에 매몰된 경향이 있어요. 그건 계층 간의 중심 사고가 뭐냐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금방 말했던 커뮤니티 같은 경우에는 ‘SNS’이게 대세잖아요. 그런 분야의 사업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창출을 해내는 시기란 말이에요. 어차피 그런 분야는 나이 든 사람이 못해. 단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는 거죠.

2, 30대는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데 강하고 경험은 부족하지만, 4, 50대는 과거의 경험과 민주화라는 분위기가 있다는 상당히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또 2, 30대는 그런 부분이 없죠. 개인주의화 되어서 머리는 좋은데 지혜는 없는 거죠. 지식과 과거 민주화의 경험이 상호 침투를 해서 뭔가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부족한 거죠.

나이가 들어서든 나이가 적어서든 그런 생각을 훈련하고 단련해야 살아남는 거에요. 구글, 다음 한메일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다음도 처음에 메일 공짜로 해서 줬고 구글도 모든 프로그램을 무료로 다 배포했잖아요. 젊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할 수 있는 거로 생각해요. 2, 30대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4, 50대는 그걸 못해요.

인터뷰어 : 앞단에서 시도하는 사람과 커뮤니티를 뭉쳐주는 사람들이 함께 가는 그림이 그려지네요.

유창하 대표 : 맞아요. 2, 30대가 커뮤니티사업을 하면서도 당장 먹고 살기 힘드니까 그런 쪽으로 잘 못 하잖아요. 당장 사업을 하는데 수익이 들어와야 하고 금방 버는 수익이지 오래 버는 수익이 아니니까요. 멀리 보기 위해서는 당장 수익이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계속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무료지만 베푸는 심정으로 하다 보면 나중에 커질 수 있는 거죠.

큰 데랑 비교는 안 되겠지만, 마음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겠다는 거에요.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먹고사는 부분은 남하고 비교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내 수입이 적절하면 그걸로 만족하고 살아가면서 그 팀들이 밀고 가는 거죠.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지구력이 없다는 거죠. 그만한 지구력이 없으니까 훌륭한 IT 기기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지 못한 거죠.

인터뷰어 : 지금 계속 마음과 자세를 말씀하셨는데 젊은이들이 그 자세를 갖지 못한 것 같네요.

유창하 대표 : 그건 힘들지. 민주화 과정도 공동체 의식도 거치지 않았고 편안하게 받으면서 살아갔으니, 머리는 공부만 하는 거죠. 좋은 것만 보고, 편한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찾다 보니 어려운 부분에 부닥치면 시련을 못 이기는 거죠. 이런 사고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고 시대가 줘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한마디로 허약한 거죠, 체질 자체가.

인터뷰어 : 시대도 그렇고 주입식 교육만 받다 보니 그런 거겠죠?

유창하 대표 : 근데 그게 또 청년만의 잘못이 아니죠. 기존사회의 책임이지. 50보 앞을 내다보면서 청년, 여성, 아동의 문제와 교육의 부분을 고민하면서 만들어 줘야 하는데, 이 책임은 기성세대에 있는 거고요.

이런 것들은 어쩔 수 없는 거죠. 어쨌건 지금이라도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인식을 자꾸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는 거예요. 청년 스스로가 왜 나약해졌는지 알고 대응하는 거랑 모르고 있는 거랑 다르니까요. 우리가 북카페를 만든 이유도 다 그런 거예요. 왜 “당장 돈벌이와 집을 어떻게 하면 살까”, “결혼은 어떻게 할까?”, “어떻게 재밌게 놀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이런 걸 사람들이 자꾸 해야 하거든요.

인터뷰어 : 그런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삶에서 계속 던지고 계셨던 거네요. 여러 활동을 하시면서요.

유창하 대표 : 원래 내가 가르치려 들면 잘 안 배워져요. 자기도 뭔가 배우려고 할 때, 남들한테 할 이야기도 생기지, 아무리 나보다 젊고 어린 사람이고 고등학생일지라도 그들에게 배우려고 할 때 정말 좋은 점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거죠.

인터뷰어 : 지금은 뭘 배우시나요?

유창하 대표 : 요즘은 인문시대라고 하잖아요.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건지. 행복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행복의 척도에 대한 것도 같이 공유를 하고 있어요. 또 다들 생활이 어려우니까 어떻게 하면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기업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그런 기업들이 누구 한 사람의 큰 주주가 운영하는 회사를 대항해서 이길 수 있는 사회적 기업들이 많아지게 만들고 싶어요. 활발하게 운영이 되면 더 좋겠죠. 그게 내가 지금 사람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인터뷰어 : 대표님의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럼 다시 두레마을로 돌아와서 두레마을을 한마디로 정의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창하 대표 : 교민에 의한 교민을 위한 교민의 공동체.

인터뷰어 : 이걸 통해 실제로 어떤 걸 기대할 수 있을까요?

유창하 대표 : 같이 연계한 좋은 모델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죠. 그런 고민은 계속하고 있어요. 육아 관련된 오프라인 조직을 하나 준비하고 있고 온라인은 한국에서 준비하는 게 하나 있어요. 오프라인 소식지도준비를 하고 있고 상해에서는 말했던 오프라인들이 서로 상생하고 주고받으면서 커가는 그런 구조를 생각하고 있어요.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니까 차근히 하고 있어요.

인터뷰어 : 북카페나 다른 오프라인 조직들이 어떤 구조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유창하 대표 : 처음엔 내가 다 설정해요. 다른 사람들은 오프라인 기획을 잘 못 해서 기획은 내가 많이 하는 편이고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틀이 만들어지면 독립하는 거죠. 덜 성숙하면 내가 운영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사람들을 모으면 교육을 어떻게 하고 뭘 잡을지 이런 걸 하는 거죠.

인터뷰어 : 제대로 CEO의 역할을 하시네요.

유창하 대표 : 이걸 통해 돈 벌겠다 하는 게 아니니까 잘 되는 거에요. 그런데 돈 안 되는 걸 하는 게 또 어려워요. 시대 바뀌는 그 흐름을 읽어야 하니까요. 5년 뒤 어떻게 변할 건지, 이런 것들을 읽어내고 그 부분을 공략하는 거죠. 대기업들의 사회도움활동은 그냥 폼으로 하는 거고. 그게 아니고 스스로 그걸 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과 같은 공동체와 마을 공동체 만들어내고 그 사람들이 훈련해내는 거죠.

인터뷰어 : 커뮤니티 운영이 다른 사업과 다른 점은 영리추구에 대한 부분이겠네요?

유창하 대표 : 영리와 비영리에도 완전한 비영리가 있고 완전 영리가 있어요. 영리가 강한 조직이 있고 비영리가 좀 더 강한 조직이 있는 거죠. 이걸 분리할 필요는 없어요. 서로 융합돼서 움직이는 거거든요. 그런 걸 잘 결합해내고 잘 읽어내야지요. 그래야 조직이 잘 움직이거든요.

비영리 같은 경우엔 전문성이 없어요. 그냥 아마추어죠. 사업체의 좋은 점과 배울 점을 비영리의 장점과 결합하고 나쁜 점은 빼는 거죠. 이렇게 결합하는 거죠. 좀 더 비영리를 앞세워야 하면 비영리를 크게 잡아요. 우리 두레마을 같은 경우는 비영리 부분이 크고 사업성이나 이런 것들이 조금 섞이는 거에요.

인터뷰어 : 미래를 내다보는 데는 경험도 필요하겠지만, 그 외에 필요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유창하 대표 : 그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거죠. 사람들의 심리와 책을 보고, 사회를 보고, 이론과 실천을 하면서 많은 결과를 봐야겠죠.

인터뷰어 : 주로 사회학 공부가 되겠네요.

유창하 대표 : 책은 전반적으로 다 봐야 해요. 좋은 책을 잘 선정을 해서 봐야죠. 자연과학, 환경, 인문, 수학, 역사, 의학 등 모든 분야의 책을 잘 보되 정말 꼭 봐야 할 책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해요.

우리 북카페에서 제시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에요. 교민들이 읽어야 할 추천서적을 자영업자가 선정해주고, 중고등학생이 선정해주고, 애들 기르는 엄마들이 선정해주고, 장년층이 선정해주는 작업을 할거에요. 왜냐면 시간 없잖아요. 한국에서는 이런저런 게 많은데 여기는 별로 없거든요. 해외 교민들 특히, 상해 교민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을 계층별로 선정하는 작업이 상당히 중요한 작업이죠.

인터뷰어 : 그러면 이런 아이템들을 만들어내고 하는데 주로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유창하 대표 : 나는 뭐 10시면 자고. 아침엔 4시에 일어나서 조금 책, 인터넷을 보다가 글을 써요. 아침 되면 밥 먹고, 여기 와서 처리할 일이 있으면 처리하고요. 내가 온라인으로 하는 일들이라서 어디에 있든 상관없어요. 반은 한국에 있어서 주로 서울, 부산, 상해 쪽으로 움직이니까 움직이면서 일을 많이 해요. 어디 앉아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사고는 아주 옛날 방식이죠. 지금은 뭐 남한테 보이기 위해서 자리를 만들고 좋은 사람들 데리고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인터뷰어 : 젊은이에게 꼭 필요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 취업이나 돈 많이 주는 곳에 취업하는 것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유창하 대표 : 내가 무엇을 나의 직업으로 삼느냐보다 무엇을 나의 큰 흐름으로 잡느냐가 중요한 거 같네요. 뭐 어딜 가서, 얼마를 받고, 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예전엔 그게 잘 되고 또 통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요. 아주 바늘구멍이거든요.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갈 필요가 없는 거죠. 아직도 사람들이 잘 몰라요. 좋은 배경이 있고, 집안이 잘나가고, 학벌도 좋고, 그럼 그 구멍에 들어갈 확률이 있어요. 그런데 모든 환경이 받쳐줘야죠. 중국도 점점 그렇게 되겠죠.

인터뷰어 : 그러면 10년 후의 두레마을을 상상한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유창하 대표 : 10년 후면 난 은퇴를 하겠죠? 두레마을은 상해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으면 싶고 더 나아가서는 중국을 넘어 일본 한국 3개 국가에서 같이 정보교류를 하게 됐으면 하는 목표가 있어요.

인터뷰어 : 큰 도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다시 한 가지만 나눠주세요.

유창하 대표 : 너무 눈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다 보면 정말 찾아야 할 것을 놓치게 돼요. 멀리 보지 못하면 오히려 자기 이익을 찾지 못하죠. 야간 운전 하듯이 앞에만 보고 가잖아? 그럼 결국 이제 더 큰 것을 못 보는 거죠.

인터뷰어 : 그러면 대표님에게 협의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유창하 대표 : 제가 몇 번 참가를 안 해서…(웃음)

인터뷰어 : 그럼 앞으로 어떤 의미가 되었으면 하시나요? (웃음)

유창하 대표 : 상해 관련된 IT에 연관된 많은 조직과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하고 정착을 해서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과 사업이 같이 공생하는 사업을 찾아서 공동으로 하는 사업을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인터뷰어 : 인터뷰 소감 한마디만 부탁합니다.

유창하 대표 : 상당히 잘하네요. 두레마을에 소개해줄 친구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인터뷰어 : 마무리하면서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유창하 대표 : 다 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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